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납시다.(행3:1-10)

2012. 3. 7. 22:38말씀과삶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납시다.(행3:1-10)


   오늘 본문에서는 40년된 앉은뱅이에 대한 말씀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 앉은뱅이는 그야말로 온갖 불행을 혼자 다 가진 자였습니다. 그는 나면서부터 하반신을 전혀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는 아주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기에 맨날 구걸해서 먹는 거지였습니다. 그는 누군가가 성전 앞에 데려다 주지 않으면 구걸도 못하는 형편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습니다. 걷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동전 구걸해서 자립한다는 것도 불가능했습니다. 그런 사람과 함께 살겠다는 여자가 없으니 장가갈 희망도 없습니다. 집 장만의 희망, 장가갈 희망, 가족들과 오손도손 살 희망이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절망적인 것은 그는 한 번도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없고, 도움만 받으면서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불행 끝 행복 시작의 사건이 바로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그의 앞에 나타난 베드로와 요한이 이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를 일으켜 세워 준 사건이야 말로 엄청난 사건이 아닐수 없었습니다.

   사도들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하면서 이 사람의 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그 사람은 얼떨결에 사도들이 끄는 대로 그냥 일어섰는데 신기하게 벌떡 일어났고, 걸어보니 걷게 되었고, 또 뛰어보니 뛸 수 있는 것입니다.

    드디어 이 사람은 불행에서 행복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밤 같은 삶에서 낮 같은 삶으로 전환되는 날이었습니다. 이제 이 사람은 집 장만의 꿈, 장가갈 꿈, 남을 도와줄 꿈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는 또 다른 장애자를 업어서 도와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무엇을 하였기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까? 그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사도들이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면서 손을 잡고 일으킬 때 그냥 일어난 것 밖에는 없습니다.

    오늘 이 시간 본문을 통해 저와 여러분 모두가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1. 앉은뱅이는 누구인가

    먼저 1절과 2절을 보겠습니다.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본문 2절을 보면 '나면서‘, ’사람들이 매고 오니‘, ’날마다‘ 이 세 마디가 그의 형편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읽지는 않았지만, 4장 22절을 보면 이 사람의 나이는 40여세 쯤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무려 40년 동안 스스로 전혀 걸어 다니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손길을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그를 아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 날마다 성전 문 앞까지 옮겨졌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성전 문 앞에 앉아 기도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구걸하는 것이 그의 삶의 전부였습니다.

    성도여러분 미문에 있던 앉은뱅이처럼 육체적인 앉은뱅이는 아니지만 영적 앉은뱅이가 아닌지 이 시간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앉은뱅이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1) 스스로 활동하지 못하는 사람

    앉은뱅이의 첫 번째 특징은, ‘스스로 활동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2절에 보면, 사람들이 그를 메고 왔다고 합니다.
자기 혼자 스스로 걷지를 못하니까, 사람들이 메고 온 것입니다.
    그런데요. 오늘날 우리 교회에도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 보면 자기 스스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수동적이 되어 남편에 끌려서 교회에 나오고, 아내가 가자고 하니까 가정의 평화를 위해 할 수 없이 예배당에 나오고, 친구가 가자고 하니까 못이기는 척 하고 교회에 나오는 사람이 바로 앉은뱅이 신앙인입니다.
    예수를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분들은 그런 대로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교회를 6개월, 1년, 2년, 5년, 오래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잊을 만 하면 ‘시험 들었다’, ‘시험보고 있다’고 하고, 심심하면 ‘누구누구 때문에 신앙생활 못 하겠다’, ‘무슨 무슨 일 때문에 교회 나가기 싫다’고 하는 사람들이, 다름 아닌 영적인 앉은뱅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육적인 생활이나 영적인 생활을 스스로 하지 못하고 타인에 의하여 움직이는 사람은 정말 불쌍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인생을 자기가 책임지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손에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다른 사람들의 손에 좌지우지 되는 ‘앉은뱅이 신앙인’이 아니라, 스스로 걸을 수 있는 ‘자립형 신앙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돈이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

    앉은뱅이의 두 번째 특징은, ‘돈이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왜 앉은뱅이가 성전 미문에 앉아 있었습니까? 구걸하기 위해서입니다.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로부터 구걸해서 그 돈으로 먹고살기 위해서 성전 미문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장애의 문제, 가난의 문제, 등의 여러 가지 문제를 돈으로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돈이면 되는 줄로 알았습니다.
    자신의 모든 문제가 돈이면 해결되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성도여러분! 앉은뱅이가 돈으로 일어날 수 있습니까? 일어날 수 없습니까? 그는 절대로 돈으로 일어나지 못합니다. 은과 금으로 일어나지 못합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은과 금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문제가 은과 금으로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돈이 이 세상에서 최고가 아니라, 주님이 우리 인생에서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눈앞이 있는 것만 생각하는 사람

    앉은뱅이의 세 번째 특징은, ‘눈앞에 있는 것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앉은뱅이는 성전 미문 앞에 앉아 수십 년 동안 구걸하면서도, 예배당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에 대한 관심이 없었습니다.
    매일 성전 앞에 앉아서 성전에 오고가는 사람들로부터 구걸할 줄은 알았지만, 그에게는 내일이 없었습니다. 그저 그 날 구걸하여 그 날 먹고사는 하루살이 인생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우리 주위에 보면 멀리 바라보지 못하고, 눈앞에 있는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땅을 떠나가면 어떻게 될 것인지 죽음 이후를 생각하지 않고, 이 땅에서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생명이 다한 후, 이 땅을 떠나가면 심판이 있음을 기억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2.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야 합니다.

    이 앉은뱅이가 걸었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바로 예수의 이름 때문이었습니다.

6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누구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베드로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하면서 그의 오른 손을 붙잡아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앉은뱅이의 발과 발목이 힘을 얻고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40년 동안 단 한번도 일어나 본적도 없는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는 성전 미문에 앉아있으면서도 믿음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믿음은 그의 이 삶의 절실한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혀 알지를 못했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문제는 돈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인 것을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수동적인 삶에서 적극적인 삶으로, 문에서만 맴도는 신앙이 아니라 중심으로 들어온 신앙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이러한 일들이 나타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영적으로 앉은뱅이가 아니라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는 놀라운 은혜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걷기를 위해 3가지를 해야 합니다.


    첫째,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일하게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성령의 충만을 받는 사람이요,
기도하는 사람은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기적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잘못이지만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기적을 보여주십니다.

    “생각을 하면 사람이 움직이지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움직인다. ”라는 말처럼 기도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유대인들이 하루 세 번을 하나님께 기도하는 좋은 전통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아침에 기도하는 것은 쉽고, 저녁에 일을 마치고 기도하는 것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낮에 기도한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일 하는 중에 기도하기 위해서 일을 쉬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일을 시작하는 아침에도 기도로 하나님께 의논과 지혜와 도우심을 구함으로 시작했습니다. 일을 진행하면서도 기도로 능력을 구하며 일을 했습니다. 일을 마치고도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기도했습니다.

    코카콜라의 창업자인 아사 G 캔들러는 알콜 중독자였습니다.
그는 항상 술에 취해 있었습니다. 의지력도 나약했습니다. 주위사람들에게 몇번이나 금주 선언을 했으나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어느 날 술에 취해 귀가하던 그는 벼락같은 마음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자신의 본능적 요구를 거절하는 사람이 성공한다" 캔들러는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아내는 바로 그 시간에 캔들러의 '금주'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 부부는 서로 손을 잡고 눈물의 기도를 드렸고, 캔들러는 아내의 기도를 통해 영혼의 안식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알코올의 유혹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습니다.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기도 의 능력으로 술을 끊은 것이었습니다.

   캔들러는 그때부터 수입의 10%를 철저히 헌금했습니다. 코카콜라 회사는 창업주의 금주 선언 이후 장족의 발전을 거듭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한 사람의 기도는 엄청난 일을 이루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것은 기도하는 자만 체험하는 것이요, 기도해 본 사람만 누리는 특권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능력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일어나기를 원하십니까?

    주님 앞에 무릎을 끓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붙잡고 주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몸부림을 치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애에 기도가 회복되어지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기도의 시간의 시간이 회복되어 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둘째, 예수님의 이름을 믿어야 합니다

    앉은뱅이가 베드로와 요한을 만나고 눈이 마주쳤습니다.
앉은뱅이는 은이나 금을 원하였지만, 베드로는 예수의 이름을 주었습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능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생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구원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힘들거나, 신앙생활을 하면서 앉은뱅이의 신앙으로 있습니까?
그렇다면 예수의 이름을 믿고 의지하십시오. 그러면 일어나게 될것입니다.

   앞으로 삶이 힘들고 지치고 답답해도, 염려하지 말고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예수의 이름을 믿기만 하면 어디서든지 어느 때에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발과 발목이 힘을 얻고 뛰기도 하고 걷기도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진 믿음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앉은뱅이에게 ‘우리를 보라. 은과 금은 없거니와 내게 있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외쳤습니다. 우리의 심령 속에도 주님이 계실 때 세상을 향하여 "우리를 보라" 고 담대히 외칠 수 있습니다.
    절망 속에 빠져 있던 나면서 앉은뱅이 된 사람은 베드로와 요한의 눈동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의 손을 잡는 순간, 앉은뱅이는 자기를 일으키는 예수님의 사랑의 손길을 느꼈을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우리를 보라"고 할 때 앉은뱅이는 그들을 바라보았습니다.

    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무언가를 바라보아야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보아도 좋은 것을 보아야 합니다.

    극장 프로그램을 보면 극장에 가고 싶고, 술병을 보면 술 마시고 싶고, 도박판에 가면 도박하고 싶고, 춤추는 사람을 보면 춤추고 싶어집니다.

   엉뚱한 곳을 바라보는 사람은 파멸에 빠지고 맙니다. 더럽고 추한 것을 보면 더럽고 추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름다운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창조적인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온전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의 친구는 어려서부터 산간지방에서 자라났고 그 지역의 산에 대하여는 아주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산에 올랐다가 길을 잃었습니다. 미국의 산은 매우 거대하기 때문에 산에서 길을 잃으면 목숨을 잃기 쉽다는 것을 잘 아는 그 사람은 당황했습니다. 그는 있는 힘을 다하여 노력하는 중에 마침 다행스럽게도 산속 오두막집에 혼자 살고 있는 노인을 만나 그의 도움으로 살아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노인이 남겨준 말을 결코 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젊은이, 산에서 길을 잃으면 보통 사람들은 길을 찾아야겠다고 산밑으로 내려가는데 그것이 죽는 길이라오. 산중에서 길을 잃으면 반대로 위로 올라가야만 사는 것이라오. 위로 올라가서 자기의 위치를 발견하고 어디에 길이 있는지, 어떤 쪽에 마을이 있는지 분명히 방향을 확인하고 내려가야만 사는 것이라오."

    문제가 생기고 어려움이 오면 세상으로 조급히 내려갈 것이 아니라, 더욱 위를 사모하며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께 가까이 가면 문제와 역경이 해결됨을 믿어야 합니다. 이처럼 앉은뱅이는 위를 보는 순간에 놀라운 기적 가운데 걷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도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삶을 살아가게 될 때 기적을 체험하게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신앙이 일어나야 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직장이 일어나야 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가정이 일어나야 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교회가 일어나야 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나라가 일어나야 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예수의 이름을 마음에 새기고, 예수의 이름에서 떠나지 않아야 합니다.



3. 일어날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8-9절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8절 “뛰어 서서 걸어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및 하나님을 찬미함을 보고 /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앉은뱅이가 일어났습니다.

    개인의 인생이 회복되었습니다.
    가정이 회복되었습니다.
    그  주변이 이 일로 인해 놀라기는 하였지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일어날 때 지금까지 남에게 도움만 받던 그가 이제 부터는 남을 도울 수 있는 인생으로 탈바꿈하게 되었습니다.
   일어날 때 땅만보고 원망만 하던 그가 하늘을 바라보면서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일어날 때 주변사람들이 하나님의 귀한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탐험가 봅 바틀렛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외국을 여행하는 중에 아주 희귀한 새 몇 마리를 얻었답니다. 본국에 돌아 오기 위해 새장에 가두고 망망해를 항해합니다.
    그 중에 한 마리가 유난히도 시끄럽게 굴면서 새장에 갇혀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서 새장을 발톱으로 할퀴고 머리를 찧는 등 몸부림 치고 열광을 하였습니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여 그 새를 망망 대해로 날려 보내었습니다. 새는 미친 듯이 기뻐하며 창공을 높이 높이 날아올랐습니다.
   몇  시간 후였습니다. 그렇게 날아올랐던 새들이 다시 배로 돌아와서 지친 몸으로 갑판 위에 떨어져 쓰러졌습니다.
    자유를 얻었다고 날아올랐지만 망망대해에 발붙일 곳이 어디있고 먹을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주어 담아서 다시 새장에 집어넣었습니다. 더 이상 이 새장은 그들에게 감옥이 아니었습니다. 새장은 안식처가 되었습니다. 끝없는 바다를 건너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바로 이 새장에 있었습니다.
    굶주린 배를 채울 수도 있고 편안하게 거할 수 있는 길이 바로 이 새장 안에 있었습니다.
    우리 인생이 그렇지 않습니까? 주님 떠나 교회 떠나 가정 떠나 어디에 행복이 있고 안식이 있습니까? 신기루처럼 잠깐 행복이 있는 것처럼 안식이 있는 것처럼 행복이 있는 것처럼 자유가 있는 것처럼 보일 따름입니다.


    우리 주님 안에서 이제 일어나야 합니다.

    실패의 현장에서 앉은뱅이 신앙에서, 앉은뱅이 마음에서 앉은 뱅이 습관에서, 앉은 뱅이 삶의 방식에서 일어나야합니다.

    우리의 환경이 이루 말할수 없을 만큼 힘들지라도 나사렛 예수이름으로 일어날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