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하는 사람들/욘2:1-4

2012. 3. 7. 22:27말씀과삶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욘2:1-4



    미국이 낳은 유명한 사상가 벤쟈민 프랭클린은 '실패'에 관하여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실패가 두려워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실패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가는 그의 인생 자체는 이미 가장 큰 실패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실패는 누구나 원치 않는 것입니다. 언제나 승리를 원하고 성공을 바랍니다. 그러면서도 사노라면 누구에게나 몇 차례씩은 찾아오기 마련입니다(사업, 입시, 결혼, 자녀교육, 인간관계에서의 처신...) 크고 작은 실패를 우리는 많이 경험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내가 실패했다는 사실(fact) 자체가 아니라 그 실패를 바라보는 나의 태도(attitude)입니다. 여기에 따라서 실패 속에서 성공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있고, 성공속에서 실패를 거두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는 거기에는 항상 승리만 하고 언제나 성공 가도만 달렸던 사람들의 이야기만 적혀있지 않고, 오늘의 우리들처럼 때로는 쓰디쓴 실패를 경험했고, 그 아픔으로 몸부림쳤던 이들의 이야기도 진솔하게 묘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성경속의 하나님은 실패자들을 헌신짝 버리듯이 다루시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그들을 다시 찾으시고 그들에게 「제 2의 기회」를 베풀어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1. 요나의 경우

    본래 선교사로 부름받은 요나는 다시스행 여객선에 몸을 실은 채 관광객이 되어 도피 행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 요나는 순조로운 여행길로 스스로 자위하면서 하나님의 분부 따위는 새까맣게 잊어버린 채 배 밑창에 내려가서 편안한 잠을 청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요나를 하나님이 가만두지 아니하시고 광풍을 대동하여 가는 길을 막으셨습니다. 이때 오히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 선원들은 자기들의 배에 탄 사람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하여 사력을 다하고 있었고, 심지어는 요나가 자신을 들어 바다에 던지라 했을 때에도 이들은 요나의 생명을 할 수 있으면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최후까지 안간힘을 써보기까지 했습니다. 

    잠든 자를 깨워야 할 자가 잠들어 있었습니다. 어두움을 밝혀야 할 자가 스스로 어두움에 갇혀 있었습니다. 이웃의 아픔에 동참하여 그 아픔을 치료해 주어야 할 자가 이웃을 외면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선교의 실패자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기도에도 실패자였습니다. 사실 그는 폭풍우 몰아치는 배 안에서 이방인 선원들로부터 "일어나 네 하나님께 구하라"(욘1:6) 는 독촉을 받으면서도 기도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입을 열고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그의 기도는 자발적인 기도가 아니라, 자신이 진멸되기 직전, 생의 막다른 골목에 몰리게 되었을 때 어쩔수 없이 드려진 기도였습니다. 지금도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지 않고는 기도할 줄 모르는 가련한 이 시대의 요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위기에 처할 때만 기도하려고 하는 이상한 습성이 우리에게 감추어져 있습니다.
여러분! 요나에게 있어서 물고기 뱃속에서 다시금 하나님을 경험했고 기도훈련을 받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비록 실패했었지만 늦게나마 하나님의 광대하심에 대해 확실히 알게 되었고 늦게나마 그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서 놀라운 기적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요나에게 하나님은 다시 말씀으로 찾아오셨습니다(2:1). 그리고 동일한 일을 부탁하셨습니다(2:2). 하나님은 꼭 요나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을 통해서 얼마든지 자신의 뜻을 이루실 수 있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외치지 않으면 돌들로 하여금 소리치게 하실 수 있으신(눅 19:40) 분이십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을 때 저 나귀로도 할 말을 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신데도(민 22:28-30), 그렇게 하시기 전에 실패자들에게 다가오셔서 저들에게 '제 2의 기회'를 베풀어 주시는 까닭은 무엇인가요? 우리 속에 시작하신 일을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시기를 원하시는(빌1:6) 여호와의 신실하신 속성 때문입니다. 비록 한 두번 실패했을지라도 그들을 버리시기 전에 다시 찾아가셔서 second chance를 주시는 것입니다.



2. 베드로의 경우

    여러분은 마땅히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할 자리에 있었으면서도 당시 상황이나 체면 때문에 예수님을 전하지 못하고 마치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처럼 처신한 적은 없었습니까? 성경을 보면 베드로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신 주님은 그러한 베드로를 탓하지 아니하시고 크나큰 사랑으로 품어주셨고, 아픈 상처를 치유해 주셨습니다. 그 후 오순절 성령을 통해 변화된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했던 바로 그 성전 뜰에 서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담대하게 전했습니다. 지난 날 치욕스러웠던 장소에서 승리를 거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나름대로의 패배의 장소가 있을 것입니다. 아직도 그곳은 패배의 장소로 남아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형편을 낱낱이 주님께 아뢰면서 주님의 도우심을 청하기 바랍니다. 실패자 베드로에게 역사하셨던 주님은 여러분에게도 동일하게 역사하실 줄 믿습니다.



3. 마가 요한의 경우

    바울과 바나바는 1차 전도여행을 떠나면서 젊은 일꾼 마가를 대동했는데, 바나바의 고향인 구브로를 지나 밤빌리아 지방의 버가에 이르렀을 때에 어인 영문인지 마가는 도중 하차하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1) 자신에게 주어진 보조적 역할(행 13:5, 수종자)에 대한 불만 때문? (2) 선교에 따르는 계속되는 위험에 겁을 먹은 나머지? (3) 안락한 도시 생활에 익숙한 그가 객지 생활의 불편함을 견디기 어려워서? 라고... 어쨌든 젊은 일꾼 하나가 되돌아가 불편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1차 전도여행을 무사히 잘 마쳤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녀와서였습니다. 안디옥으로 도라온 두 사람은 2차 전도여행을 앞두고 마가를 데리고 갈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큰 다툼이 일어나게 되었고, 급기야는 바나바는 자기 생질인 마가를 데리고 고향인 구브로로 내려가고, 바울은 바나바 대신 실라를 데리고 2차 전도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그로부터 마가가 성경에 다시 언급되기 까지는 11-12년의 세월이 흐릅니다.
그동안 마가는 믿음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베드로를 만나 예수님의 생애에 대해 자세히 듣고 최초의 복음서인 마가복음을 기록합니다. 훗날 바울이 로마의 옥중에서 순교의 날을 기다리고 있을 때에 많은 사람이 그의 곁을 떠났지만 오직 세 사람만은 끝까지 바울 곁에 있으면서 그를 도왔는데, 그 중 하나가 마가였습니다.



결론

    한번 실패했다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그 실패의 아픔 속에 얽매여서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운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선진들에게서 배워야할 위대한 교훈 하나는 그들이 한번도 실패나 좌절을 경험하지 않았다는 점이 아니라, 그들이 절망적인 상황 속에 던져졌을 때 거기서 철저히 회개하고 새롭게 출발하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요나, 베드로, 마가 요한 이들의 공통점이 한가지 있다면 이들은 모두 "다시 시작한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지난 6개월을 어떻게 살았는지 모릅니다. 급하게 달려오는 중에 벌써 여기까지 왔습니다. 마라톤으로 말하자면 반환점을 막 돌아서서 이제 다시 왔던 길을 골인점을 향해서 뜀박질하는 우리들입니다. 지나온 시간들을 생각해 볼 때 자랑할 것 보다는 부끄러운 것이 많고, 주님 앞에 내보일 것 보다는 감추고 싶은 것이 많은 저와 여러분일는지 모르지만 이제 때묻지 않은 남은 절반, 지난날의 그 실패에 얽매이지 않고, 지난날의 그 불충함과 게으름 때문에 낙심하지 않고 오늘 우리의 손을 잡아주시는 주님의 손을 의지하고 다시 일어나시는 성도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