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시간의 법칙
2013. 4. 8. 10:08ㆍ퍼온글(비공개)
1만시간의 법칙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역시 무엇을 하든지 그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려면 1만 시간을 투자하여야 한다는 것이지요. 1만 시간은, 하루에 3시간을 투자하면 10년, 5시간이면 5년, 10시간이면 3년입니다. 한 우물을 파는데 1만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란 참으로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 속담에도 ‘10년 공부’라는 말이 있지요. 한 분야에 전문가가 되려면 10년은 공부를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 정도 시간과 정성을 들여가며 열심히 하면 한 분야의 전문가 대열에 합류하게 됩니다.
우리 모두가 전문가 이자 ‘달인’의 경지에 이른 것이 있습니다. 바로 ‘걷는 것’과 ‘말하는 것’ 등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거의 ‘독학’이라고 할 수 있지요. 걷는 것만 보아도 처음에는 엄마 손을 붙잡고 한 걸음씩 떼게 되지만 곧 엄마는 저 만큼에서 손뼉을 치면서 격려를 하고 아기는 뒤뚱뒤뚱 엄마를 향하여 서너 걸음 옮기다가 주저앉곤 하지요. 그러면서 이내 걷고 뛰기도 하지만 엄마의 이율배반(!)이 여기에서 드러나지요. 그렇게 걷기를 연습시키며 즐거워하더니 이제는 “제발 좀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합니다. 하하
그러나 아이는 몸이 아픈 상태가 아니라면 더욱 걷고 뛰기를 열심히 하여서 결국 서너 살이 되면 적어도 걷고 뛰는 일에서 크게 따로 배울 것이 없어지게 됩니다. 그리나 만약 뛰는 것에 선수가 되고자 한다면 그 때부터 ‘1만 시간의 법칙’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공부를 하는 것과 악기를 배우는 것도 그렇습니다. 요새는 거의 모든 아이들이 피아노, 바이올린, 하모니카, 리코더 등을 배우게 됩니다만 그것의 전문 연주자가 되려고 하면 역시 1만 시간의 법칙을 준수하고 기꺼이 감내 하는 것으로 힘든 과정을 이겨 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을 잘 한다 라는 것은 비교대상이 전제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1만 시간의 법칙이란 ‘남보다 월등히 잘 할 수 있는 노력’을 말하는 것이지요.
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는 것은 보통 두 가지로 나누어질 수 있겠습니다. 머릿속에 담는 것과 몸으로 익히는 것입니다. 어떤 연구 지식 분야에 박사학위를 받았다면 주로 머릿속에 담은 것의 결과이며 엔지니어나 악기연주자 또는 기능 올림픽 같은 분야이거나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되었다면 두 손으로 익힌 것의 결과입니다. 무엇이든 한 분야에 ‘1만 시간’을 투자하고 나면 삶의 모양이 달라지고 결실로서의 즐거운 날들이 펼쳐지게 됩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들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곧 투자의 연속이며 내게 주어진 자산을 어디에 얼 만큼 투자하느냐 하는 것으로 삶의 모양이 가름되어 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복권을 사는 것이나 주식을 매입 하는 것 등이 투자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불분명한 투자입니다. 그리고 사실은 사업을 하는 것과 공부를 하는 것 역시 투자입니다. 그것으로 좋은 모양 즉 이익의 결과에 이르느냐 하는 것은 오직 투자자의 수고와 열심 그리고 지혜에 달린 것입니다. 심지어는 결혼을 하는 것도 일종의 투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땅히 행복해 져야 하지만 자칫 불행해 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1만 시간의 법칙을 이해하고 거기에 기꺼이 투자를 하여야 하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바로 ‘행복한 삶’입니다. 내가 세상에 가지고 나온 자산은 그저 꽃피워지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가꿀 때에 피워지기 때문입니다. 즉 작든 크든 내게 주어진 달란트를 묻어 놓지 않는 사람이지요. 하나님은 완성품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자료와 재료 그리고 씨앗을 주십니다. 열심과 부지런함이 없다면 그것은 절대로 꽃피워지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잎사귀만 무성한 삶을 살다가 스러지는 이유입니다.
또 우리에게 주어진 달란트는 꾀와 술수로 꽃피워 지지 않습니다. 오직 노력과 수고의 땀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지요. 무엇을 원하십니까? 어떠한 모양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1만 시간의 투자로 그 꿈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만약 그러기에는 너무 나이가 들었다고 생각된다고 하더라도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기차에 오르시기 바랍니다. 그 여정 중에 차창 밖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1만 시간의 마무리에서가 아니라 1만 시간의 과정에서 큰 행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이들이 ‘학교 다닐 때’가 좋았다고 회상하는 것을 보십시오.
또한 1만 시간의 법칙은 필히 사람의 안팎에 공히 적용되어야 합니다. 사람의 내면 역시 많은 수고와 노력으로 온전한 모양을 갖추게 되기 때문입니다. 즉, 어느 한 가지 길을 택하여 외곬의 모양으로 간다고 하여도 인접 분야의 모든 것을 포괄적으로 품는 사람이 진정한 전문가, 장인, 또는 달인이 됩니다. 왜냐하면 전문가란 ‘재주’만 갖추는 사람이 아니라 인격을 함께 갖추는 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피아노의 타건 기술 만 열심히 익힌 사람은 피아노 건반을 잘 다루는 ‘연주의 기술자’는 되겠지만 ‘음악가’는 되지 못합니다. 그리고 음악가가 되지 못한 피아니스트의 ‘타건기술’은 듣는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넣어 주지 못합니다.
조급한 사람은 무엇에 일가를 이룰 수 없습니다. 오래 참고 인내하면서 한 눈 팔지 않고 정진하는 사람의 ‘나를 다스리는 1만 시간의 투자’로 멋진 날들을 이어가는 행복한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역시 무엇을 하든지 그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려면 1만 시간을 투자하여야 한다는 것이지요. 1만 시간은, 하루에 3시간을 투자하면 10년, 5시간이면 5년, 10시간이면 3년입니다. 한 우물을 파는데 1만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란 참으로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 속담에도 ‘10년 공부’라는 말이 있지요. 한 분야에 전문가가 되려면 10년은 공부를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 정도 시간과 정성을 들여가며 열심히 하면 한 분야의 전문가 대열에 합류하게 됩니다.
우리 모두가 전문가 이자 ‘달인’의 경지에 이른 것이 있습니다. 바로 ‘걷는 것’과 ‘말하는 것’ 등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거의 ‘독학’이라고 할 수 있지요. 걷는 것만 보아도 처음에는 엄마 손을 붙잡고 한 걸음씩 떼게 되지만 곧 엄마는 저 만큼에서 손뼉을 치면서 격려를 하고 아기는 뒤뚱뒤뚱 엄마를 향하여 서너 걸음 옮기다가 주저앉곤 하지요. 그러면서 이내 걷고 뛰기도 하지만 엄마의 이율배반(!)이 여기에서 드러나지요. 그렇게 걷기를 연습시키며 즐거워하더니 이제는 “제발 좀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합니다. 하하
그러나 아이는 몸이 아픈 상태가 아니라면 더욱 걷고 뛰기를 열심히 하여서 결국 서너 살이 되면 적어도 걷고 뛰는 일에서 크게 따로 배울 것이 없어지게 됩니다. 그리나 만약 뛰는 것에 선수가 되고자 한다면 그 때부터 ‘1만 시간의 법칙’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공부를 하는 것과 악기를 배우는 것도 그렇습니다. 요새는 거의 모든 아이들이 피아노, 바이올린, 하모니카, 리코더 등을 배우게 됩니다만 그것의 전문 연주자가 되려고 하면 역시 1만 시간의 법칙을 준수하고 기꺼이 감내 하는 것으로 힘든 과정을 이겨 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을 잘 한다 라는 것은 비교대상이 전제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1만 시간의 법칙이란 ‘남보다 월등히 잘 할 수 있는 노력’을 말하는 것이지요.
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는 것은 보통 두 가지로 나누어질 수 있겠습니다. 머릿속에 담는 것과 몸으로 익히는 것입니다. 어떤 연구 지식 분야에 박사학위를 받았다면 주로 머릿속에 담은 것의 결과이며 엔지니어나 악기연주자 또는 기능 올림픽 같은 분야이거나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되었다면 두 손으로 익힌 것의 결과입니다. 무엇이든 한 분야에 ‘1만 시간’을 투자하고 나면 삶의 모양이 달라지고 결실로서의 즐거운 날들이 펼쳐지게 됩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들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곧 투자의 연속이며 내게 주어진 자산을 어디에 얼 만큼 투자하느냐 하는 것으로 삶의 모양이 가름되어 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복권을 사는 것이나 주식을 매입 하는 것 등이 투자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불분명한 투자입니다. 그리고 사실은 사업을 하는 것과 공부를 하는 것 역시 투자입니다. 그것으로 좋은 모양 즉 이익의 결과에 이르느냐 하는 것은 오직 투자자의 수고와 열심 그리고 지혜에 달린 것입니다. 심지어는 결혼을 하는 것도 일종의 투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땅히 행복해 져야 하지만 자칫 불행해 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1만 시간의 법칙을 이해하고 거기에 기꺼이 투자를 하여야 하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바로 ‘행복한 삶’입니다. 내가 세상에 가지고 나온 자산은 그저 꽃피워지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가꿀 때에 피워지기 때문입니다. 즉 작든 크든 내게 주어진 달란트를 묻어 놓지 않는 사람이지요. 하나님은 완성품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자료와 재료 그리고 씨앗을 주십니다. 열심과 부지런함이 없다면 그것은 절대로 꽃피워지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잎사귀만 무성한 삶을 살다가 스러지는 이유입니다.
또 우리에게 주어진 달란트는 꾀와 술수로 꽃피워 지지 않습니다. 오직 노력과 수고의 땀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지요. 무엇을 원하십니까? 어떠한 모양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1만 시간의 투자로 그 꿈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만약 그러기에는 너무 나이가 들었다고 생각된다고 하더라도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기차에 오르시기 바랍니다. 그 여정 중에 차창 밖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1만 시간의 마무리에서가 아니라 1만 시간의 과정에서 큰 행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이들이 ‘학교 다닐 때’가 좋았다고 회상하는 것을 보십시오.
또한 1만 시간의 법칙은 필히 사람의 안팎에 공히 적용되어야 합니다. 사람의 내면 역시 많은 수고와 노력으로 온전한 모양을 갖추게 되기 때문입니다. 즉, 어느 한 가지 길을 택하여 외곬의 모양으로 간다고 하여도 인접 분야의 모든 것을 포괄적으로 품는 사람이 진정한 전문가, 장인, 또는 달인이 됩니다. 왜냐하면 전문가란 ‘재주’만 갖추는 사람이 아니라 인격을 함께 갖추는 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피아노의 타건 기술 만 열심히 익힌 사람은 피아노 건반을 잘 다루는 ‘연주의 기술자’는 되겠지만 ‘음악가’는 되지 못합니다. 그리고 음악가가 되지 못한 피아니스트의 ‘타건기술’은 듣는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넣어 주지 못합니다.
조급한 사람은 무엇에 일가를 이룰 수 없습니다. 오래 참고 인내하면서 한 눈 팔지 않고 정진하는 사람의 ‘나를 다스리는 1만 시간의 투자’로 멋진 날들을 이어가는 행복한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